카오루 생일 축하해
근데 이런 우울한 글 써서 죄송합니다......
내용 날조 / 궁예질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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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그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지 않아요.
- 반드시 필요한 절차야. 너를 위해서도, 우리 모두를 위해서도.
- 저를 위해서는 아닐 것 같은데요.
- ...
- 듣고 싶은 얘기가 있는 거라면..
- 아니, 그냥 네가 하고 싶은 얘길 하면 된다.
- ..그는 상당히 많은 걸 알고 있었어요. 아니, 단순히 '안다'고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멀고 깊이 내다봤어요.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랬어요. 굉장히 현학적인 말들을 하면서.. 그치만 싫지 않았어요. 그가 전달하려는 건 현학적인 게 아니었으니까.
- 어떤 점에서?
- 아이 같을 정도로 솔직했어요. 호불호라든가 시시비비라든가, 그런 직관적인 것들에 분명한 잣대가 있었으니까요. 그게 옳든 아니든 간에요.
저랑은 영 딴판이었어요. 당신들도 알겠지만 전 대충 비위나 맞추는 사람이니까.
- 계속 얘기하렴.
- '타인을 모르면 배신할 일도, 서로를 상처입힐 일도 없지. 하지만 쓸쓸함을 잊을 수도 없어.
인간은 영원히 쓸쓸함을 없앨 수 없어. 인간은 혼자이니까.'
- 그런 얘길 했단 말이니?
- 하지만 잊을 수 있기 때문에 사람은 살아갈 수 있는 거라고.. 했어요.
- ...
- 전 그 얘길 듣고 잊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 쓸쓸함?
- 모든 걸요. 잊고 싶다고 원하는 모든 것들을.
그러려면 힘이 필요하다는 걸 그는 알아줬어요. 알고 있었어요.
- ...
- 처음으로 믿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타인도 나도.
- 결과는 그렇지 못했구나.
- 절반은요. 그를 믿고 있던 마음을 배신당했으니까. 하지만 나머지 절반은..
쓸쓸함을 잊는 게 어떤 건지는 알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다행히도 그 감정이 어떤 형태였는지는 기억하고 있어요. 복구할 순 없겠지만.
- 어째서지?
- 전 더 이상 그런 진보적인 감정 같은 건 다시 느낄 수 없어요. 그러고 싶지도 않고, 무엇보다 그럴 힘이 없어요.
그가 죽었으니까요.
- 요컨대 17번째 사도에게 이카리 군이 감정적으로 의존한 이유는...
- 왜 없다고 하셨어요. 듣고 싶은 얘긴 결국 따로 있는 거면서.
- 그 애가 언제 태어났는지 아니?
- ...
- 2000년 9월 13일이다.
- ..아무렴요. 당연히 그렇겠죠.
- 그는 '인간형'일 뿐이었다. 인간의 형태를 모방한...
- 사도. 몇 번씩이나 확인시켜주지 않아도 돼요. 내가 직접 섬멸했으니까. 이 손으로.
- 일말의 죄책감도 가질 필요가 없다.
- 제가 나기사 카오루를 죽였어요.
- 그건 의미가 결핍된 결과일 뿐이다.
- 네. 남는 건 제 17사도의 섬멸을 통한 임무의 성공적인 수행이겠죠.
- 우린 필요 없는 것들에 의미를 부여할 여력이 없어.
- 다음 사도는 뭘까요?
- 뭐?
- 인간의 형태를 모방한 것 다음엔 뭐가 올 것 같냐고요. 저는..
...저는 무너지지 않을 자신이 없어요.
- 객관성을 견지해라.
- .....
- 열일곱 번째 사도는 적으로서 마땅한 당위성을 가지고 섬멸되었다.
넌 꼭 필요한 결단을 내린 거야.
- ..그렇네요.
역시 제가 그를 너무 미화하는 걸까요?
그가 남긴 좋은 기억들만 추려서 간직하려드는 걸까요?
어쨌든 내 편이었으니까, 동기가 뭐였든 나를 이해하려 들었으니까,
말도 안되는 억지를 부려서라도 그를 변호하는 걸까요?
역시 그래서는 안 되는 걸까요?
소년은 가만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철제로 된 의자가 끼익 밀렸고 맞은편에 앉은 사람은 노트북 키보드를 두드리던 걸 멈췄다.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의 아이라더니 역시 우는 걸까, 요원은 소년을 앉히지 않았다.
"전 그래도 된다고 생각해요. 저만큼은 그래도 된다고 생각한다고요."
소년은 울진 않았다. 대신 조금 기운이 빠진 걸음으로 문 앞에 다가가 문고리를 잡았다.
"카오루 군을 좋아했으니까."
소년이 취조실에서 나가자 상황실의 불이 켜졌고 소령은 버튼을 누른 채 마이크에 대고 말을 했다.
"이 시각 이후로 코드넘버 SKRNGS의 모든 기록 및 관련 데이터를 폐기합니다. 본 인터뷰는 없었던 것으로 하겠습니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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