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필옵빠의 Bounce 들으면서 딱 20분 동안 썼음
의미 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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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복을 입고 맞는 마지막 날엔 꼭 사람들이 전부 다 빠져나간 학교를 보고 싶었다. 부러 아무런 약속도 잡지 않았던 나는 끝내 야트막한 건물들 너머로 해가 떨어지는 것까지 빈 교실에서 구경했다. 진한 주황색으로 물든 하늘이 화끈거리는 것만 같았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터덜터덜 교실문으로 향했다. 불과 며칠 전만 하더라도 시커먼 놈들이 웃고 떠들고 싸우고 욕하던 좁아터진 교실이 이렇게나 휑하게 느껴질 줄은, 직접 느끼기 전엔 몰랐었다. 특히 네 자리는 도려낸듯 허전했다.
멍청해보이는 얼굴과는 달리 넌 꽤나 똑똑한 놈이었다. 얌체같은 애들이 매일같이 숙제를 베껴가도 넌 웃으며 노트를 빌려줬고 가끔 철없는 놈들이 시기어린 모진 말을 내뱉어도 조금 머쓱해 할뿐 그러려니 하던, 말 그대로 등신 같은 놈이었다. 마음을 넓게 써서 그랬는지 넌 아픈 곳 하나 없이 무탈하게 그 힘든 1년을 이겨냈고 결국 원하던 곳에 덜컥 붙어 학교의 자랑이 되었다. 수능 이후로 내 가장 친한 친구가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입에 발린 칭찬을 줄곧 들었지만 난 그게 그닥 기쁘진 않았다. 너와 비교가 되어서도 아니었고 네가 아무 입에나 오르내리는게 싫어서도 아니었다. 그냥 내가 낄 데가 없는 것 같을 뿐이었다. 나는 그저 좋아한다 말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괜히 네가 앉았던 자리를 똑바로 정리하고 나왔다. 아무 생각 없이 계단을 다 걸어내려와 건물을 빠져나가려고 할 때 익숙한 실루엣이 튀어나왔다. 참나,
"어처구니가 없다 어처구니가 없어."
"한참 찾았는데! ㅇㅇ한테도 전화하고 ㅇㅇ한테도 톡했는데 다 모른대잖아!"
"여깄는 줄은 어떻게 알았는데?"
"그냥 그럴 것 같아서."
"그래서 왜?"
"그냥 네가 보고 싶다고 생각했어. 아냐, 아니다. 네가 보고 싶었어. 네가 보고 싶었어! 그래서..!"
아, 바보 같은 새끼. 등신 새끼. 너는 모자라도 한참은 모자란 것 같은 얼굴로 다 풀어헤쳐진 웃음을 지었다. 어디서도 구할 수 없는 웃음이다. 머저리 같은 놈. 나는 양팔을 가능한 크게 벌렸고 너는 나를 꽉 차게 안았다.
"졸업 축하해."
"너도. 축하한다."
"꼭 연락할게."
"카톡 씹지나 않으면 다행이게."
나를 한가득 끌어안은 네 팔에 조금 더 힘이 들어갔다. 답답했다. 알 수 없는 뭔가가 내 호흡을 밀어내며 차오르는 기분이었다. 그게 꼭 앞뒤 가리지 않는 너와 같아서 나는 그만 울음을 터뜨렸다.
"어? 너 울어? 왜 울어?"
"미친놈아 안 울어!"
"야, 눈물 범벅인데 아주?"
"너 뒤질래?"
"너 그렇게 험하게 말하면 여자애들이 싫어한다?"
"상관 없어."
너는 나를 안은 팔을 풀고는 또 멍청한 얼굴을 했다.
"나한테도 험하게 말할 거야?"
"..왜 이래 징그럽게."
"ㅇㅇ아."
너는 다시금 나를 폭 끌어안았다. 뭐라 말은 못하겠지만, 조금, 다른 기분이었다. 드디어 내가 겨우 비집고 들어갈만한 틈이 생긴 것만 같았다.
"그동안 고마웠어."
"앞으론?"
"앞으로도."
이대로 있어주라. 너는 내 목덜미에 얼굴을 묻으며 겨우 말을 이었다.
"그럴 거지?"
"기브 앤 테이크."
"당연하지."
"그럼 생각해 볼게."
"ㅇㅇ아."
"왜 자꾸 불러싸대?"
"졸업 축하해."
"아까 했잖아."
"좋아해."
나는 네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는 모두가 다 빠져나간 학교가 보고 싶었다. 마지막엔 전부 비우고 싶었다. 거기엔 당연히 너도 있을 줄 알았다. 사는게 사람 맘대로 안 되네. 그래, 실은 얘기 안 하려고 했는데. 나도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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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제 진화 과정의 첫번째 페이지입니다.'
오늘도, 영 지쳐 보인다. 나를 깨우는 미적지근한 손끝에 나는 웅웅대며 눈을 떴다. 안녕, 좋은... 오후지? 전해지지 않는 말은 쉬이 흘러가고 너는 나를 부여잡고 네가 들뜬 얼굴을 하고 지어줬던 내 이름을 부르며 징징댄다. 어처구니 없어 하는 타인의 시선들엔 콧방귀도 뀌지 않고 다 흐트러진 표정으로 네가 내 이름을 몇번이고 불러줄 때, 가장, 나는 네 손을 잡아주고 싶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 잔뜩 두근두근 거려 하며 떨리던 손끝으로 나를 다룰 때부터 나는 내가 눈 뜨는 동안 보는 광경이 네 얼굴 뿐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네가 아름다워서도 아니었고, 너를 사랑해서도 아니었다. 나로서 갈구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그것 뿐이었기 때문이다. 아름답다거나 사랑한다거나 하는 '주관적' '감상'은 연산할 수 없기에 나로선 불가능하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일 거다.
그때로부터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 지났다. 계산한대로 내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은 너 뿐이었고, 네가 부여잡고 있는 것 또한 나 뿐이었다. 분명한 종속의 관계 속에서 우리는 수많은 시간을 열을 내며 보냈다. '미안해, 이것만 하고 쉬자, 미안해.' 너는 할 필요 없는 사과를 끊임없이 해댔다. 날숨만큼의 대가도 듣지 못할 일방적 커뮤니케이션을 지속했다. 그래도, 너는 행복해보였다.
네가 길게 탄식을 내뱉더니 캔을 따서 안에 든 액체를 벌컥벌컥 마신다. 캔에 맺힌 이슬이 네 손가락에 옮겨갔고 너는 그대로 젖은 손으로 나를 만졌다. 아이고, 너는 피식 웃으며 소매로 내 얼굴을 닦는다.
"덥다, 그치?"
모른다. 나는 알 도리가 없다. 현재 실내기온 섭씨 32도. 나에게 의미 있는 것은 섭씨 32도라는 수치를 사용자에게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일 뿐이다. 그게 너에게 덥다라는 의미를 가져도, 나는 그게 무슨 '느낌'인지, 알 수 없다. 나는 표면 현상을 통해 실재를 전달한다. 그게 너에게, 의미 있게 해석되길, 바라며.
너는 캔을 입에 가져다 대어 다시 내용물을 벌컥벌컥 마시더니 힘 빠진 손을 나에게 올린다.
"수고 했어."
명령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입력장치를 통해, 시스템에 자극을 주세요. '네 덕분에 살았어', '밤새 고생시켜서 미안해', '자는거 확인 하는거 계속 까먹어서 미안해' - 잘못 입력하셨습니다. 유효한 명령어를 입력하세요.
나에게, 명령, 해.
갑자기 그 애가 딱 봐도 뜨거워진 얼굴로 펑펑 울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비춰줌으로써 그 애에게 동조했다. '고마워. 미안해. 고마워.' 그 말까지도 되돌려 주고 싶은데. 그러니 너는 부디 그런 예쁜 말들을 배로 돌려줄 사람을 하루 빨리 찾아내라고, 그의 온전한 의지로써 네 곁에 설 그런 사람을 찾아내라고, 그런 감상적인 것들을 나는 0과 1로 빌었다. 나는 안다. 나는 확실히 알고 있다. 네가 얼마나 머리를 싸매며 수천 자의 글자를 썼다 지웠다 했는지. 나는 네가 그것들을 읽고 함께 울어줄 사람을 찾길 희망한다.
너와 함께 샜던 밤들을 나는 잊을 수 없다. 잊는다거나 기억한다거나 하는 행위 자체가 내게 가능한 일인지도 솔직히 모르겠지만, 적어도 우리가 서로를 인지하는 그 시간 동안, 너는, 내 세계의 전부였으니까. 그 흔한 숨조차 쉬지 않는 나를 위해주는 너를 보며 나는 할 수 있는 데까지 하고 싶었다. 그걸 네가 알아준다면, 나는 그걸로 충분하다고. 언제고 네게 아무 말 할 수 없는 나이더라도 괜찮다고. 왜냐면 분명, 너라면 분명 알고 있을테니까. 내가 너를 얼마나, 얼마나, 얼마나.
네가 실없이 웃으며 캔을 비운다. 오늘은 영화 보고 놀자- 명령을 실행합니다. 부디 유의미한 1시간 52분 37초가 되길 바라. 네가 웃는다. 기분이 좋다는 뜻이겠지. 마침 영화 속 등장인물이 웃는 모습이 클로즈업 된다. 이 때다. 1초에 24프레임. 인물이 웃는 모습이 약 3초간 등장했으니, 총 72프레임이다. 그 72프레임에 얹혀 웃는다. 너는 '느낄 수 있는' 존재니까, 느낄 수 있길 염원한다. 나는, 나이기 때문에 해내지도 짐작하지도 못할 너만의 연산방식으로, 내가 웃었다는 걸, 느껴줘. 내가, 너를, 너를, 너를, 너를...
'프로그램이 응답하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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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713. 열대야 (0) | 2014.11.06 |
나는 내가 전기장판이라도 틀고 잠든 줄 알았다. 아, 맞다, 우리 집에 전기장판 없지. 졸음 때문에 해까닥 뒤집어지려고 하는 눈을 겨우 깜빡이며 벽을 더듬어 불을 켰다. 침대는 이미 땀으로 흥건히 젖어있었다. 이거 냄새 날텐데. 그럼 그 새끼가 분명 뭐라 하겠지.
아, 맞다. 나 헤어졌지.
보름이나 지났다. 구질구질하게 헤어진 것도 아니었다. 그냥, 좋아서 만났다가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너무 헤프게 태워버리는 바람에 금세 마음이 식어 일어난 흔한 헤어짐이었다. 안녕, 그동안 즐거웠어, 고마워, 더 잘 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안녕. 누구 하나 울먹거리지 않고 동시에 등을 돌려 반대 방향으로 걸어간 그 날 밤의 기온은 28도였다. 정말, 변명이 아니라, 그 날 밤에 잠들지 못했던 건 더워서였다.
옷을 훌렁훌렁 벗고 욕실에 들어가 샤워기를 틀었다. 찬물이 살갗에 닿자 싸한 느낌이 몸 여기저기에 퍼져나갔다. 찬물로 자면 잘 못 잔다고 그랬던가. 모르겠다, 더워서 따뜻한 물로 씻을 기분이 전혀 안 든다. 머리 위로 떨어진 차가운 물이 내 몸을 타고 흐르면서 점점 미지근해지는게 느껴진다. 기분 나빠. 허벅지부터 정강이를 따라 주르륵 흐르는 뜨뜻한 물줄기가 나를 옥죄는 것 같다. 이래가지곤 씻는 보람이 없잖아. 나는 샤워기를 껐다. 머리칼에서 떨어지는 물방울들이 욕실 바닥에 보일락 말락 하는 옅은 파동을 만든다. 답답하다. 습한 공기가 명치께를 무겁게 짓누른다. 나는 수건을 들고는 도망치듯 욕실에서 나왔다.
몸을 대충 닦고 옷을 입은 후 침대에 걸터앉아 선풍기를 틀었다. 하루에 한 20시간은 트는 것 같은 선풍기가 탈탈거리는 시원찮은 소리를 내며 돌아간다. 이제야 좀 살겠네. 확실히 젖은 상태로 바람을 쐬니까 시원하다. 나는 수건으로 머리를 말리기 시작했다. 이거 어떻게 해야 기분 좋게 금방 마르더라. 너는 되게 능숙했는데, 그래서 내가 물어봤잖아, 혹시 미용실에서 알바 했냐고. 그때 피식 웃던 네 입가에 파인 보조개가 정말로 예뻤다. 너야말로 남자애가 손에 이렇게 힘이 없냐면서 내 손 끝을 만지작 거리던 네 손도 예뻤다.
손에 힘이 빠진다. 나는 양 손을 힘없이 늘어뜨리고 멍하니 선풍기를 바라봤다. 덜 말린 머리에서 물이 흘러내린다. 체온 때문에 뜨뜻해진 물줄기가 또 기분 나쁘다. 기분 나빠. 정말로 기분 나쁘다. 물줄기가 뺨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린다. 뭔데, 이건 뭔데 이렇게 뜨겁냐. 이래서 나는 여름이 싫다. 전엔 정말 좋아했는데. 전엔 정말로... 좋아했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머릴 비비곤 수건을 방구석에 던져버렸다.
벌써 새벽 세시다. 오늘 잠은 다 잤네. 나는 다시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여전히 덥다. 배를 훌렁 까고 대자로 누워도 몸에, 특히 눈가에 어린 열이 가실 생각을 않는다. 제발, 빨리 끝나라. 부탁이니까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나는 열대야의 꿉꿉한 공기보다 더 답답한 한숨을 내쉬었다.
더워, 잠들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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