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필옵빠의 Bounce 들으면서 딱 20분 동안 썼음
의미 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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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귀자.”
꽤나 쉬운 이야기인가 봐, 너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는 눈동자로 내게 말했다. 그에 반해 내 속은 지축이라도 뒤흔들리는듯 콰광, 콰과광 하고 난리부르스를 췄더랬다.
눈에 띄게 잘 빚어진 얼굴은 아니었지만 언제부턴가 계속 언저리의 기억에서 맴도는 입매였다. 갓 피어난 꽃잎처럼 때 하나 타지 않은 입매는 퐁, 하는 소릴 내며 벌어질 것처럼 예쁜 모양이었다. ㅇㅇ야, 하고 그 입매를 이렇게 저렇게 움직이며 내 이름을 소리내어 발음할 때면 나는 아방한 남고생처럼 시뻘건 얼굴로 모른척을 했다.
그 말인 즉슨 나는 너를 처음부터 좋아했다는 뜻이다.
소위 말하는 흰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어도 태가 나는 사람이었다. 수업에 늦어 헐레벌떡 뛰어오느라 그 깨끗한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힌 것마저도 상쾌했다. 매번 허겁지겁 밥을 먹느라 사래가 들리는 것도, 일주일에 한번은 꼬박꼬박 넘어지는 것도, 이어폰을 끼고 있으면서 이어폰을 찾는 것도 전혀 한심하지 않았고 그저 그 모든 행동 하나하나에 신기해하고 기뻐하고 행복해하는 내 모습이 한심할 뿐이었다. 너는 내게 따로 주어진 생명 같았다. 별처럼 반짝이는 눈망울도, 수줍어 달콤하던 네 입술도 내겐 꿈만 같아 나는 매일 아침을 두웅실 뜬 것 같은 기분으로 맞았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네가 사귀자고 내게 말이라도 한다면 그건 정말로 천재지변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나는 얼떨떨한 얼굴로 - 실은 울 것 같은 얼굴로 안절부절하며 네 눈치를 살폈다. 고백한 건 너인데 눈치는 내가 봤다고! 나는 고개를 떨궜다. 빨리 그러자고 얘기해. 빨리 좋다고 대답해. 박력있게 끌어안든 얼굴 한가득 웃어주든 뭐라도 해. 나는 나를 채근했지만 내 손은 뭐에 감전이라도 된듯 파르르 떨리기만 했다. 이걸 어쩐다, 싶은 순간에 네가 내 손을 잡았다. 퍼뜩 정신이 든 나는 손을 살짝 틀어 네 가느다란 손가락 사이로 내 손가락들을 하나씩 끼워 깍지손을 잡았다. 뜨겁지 않아서, 오히려 조금 시원해서 네 손을 잡으면 기분이 좋다. 목이 말라 죽을 것 같을 때 받는 시원한 생수마냥 너만의 체온이 손바닥을 타고 올라와 전신에 퍼진다. 아, 이거다. 이제서야 마른 뿌리에 기다린 봄비가 내려 무언가 돋아나 빛을 보는 기분이 든다. 선생님에 명령에 눈을 감았다 몰래 실눈을 뜨는 개구쟁이처럼 나는 찡그리며 천천히 눈을 떴고 너는 박하 같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제서야 나는,
“그래.”
하고 대답했다. 어쩔 수 없다. 이건 어쩔 수 없다는 뜻이다. 있을 수 없을 줄 알았던, 필연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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