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오신) ふたりごと

2015. 6. 6. 00:27 from 에바

신지 생일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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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니까 태어난 날이라고 해서 꼭 모든 일이 잘 풀리란 법은 없지만,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체육 시간에 발을 잘못 디뎌 발목을 심하게 삐는 건 좀 억울한 일이었다. 바보 신지는 하여간 제대로 넘어가는 날이 없다고 핀잔을 주면서도 나를 부축하는 토우지를 재촉하는 아스카와, 언제 챙겼는지 아이스팩을 슬쩍 건네는 아야나미와, 생일 액땜이라며 손을 흔드는 켄스케를 뒤로 하고 나는 뙤약볕에서 양호실로 비틀비틀 걸어갔다. 하필 양호 선생님은 1시간 정도 후에 돌아온다는 메모와 함께 자리를 비운 상태였고 토우지는 나를 침대에 앉혔다.
  “니도 참.. 날이 날인데 좀 그렇게 됐네.”
  “그러게.”
  나는 침대에 앉아 다친 다리를 들어 올렸다. 이런저런 이유로 양호실에 온 적은 몇 번 있었지만 여기 침대에 누운 건 처음이었다.
  “뭐 별 일 있겠냐. 사내놈이 운동하다 그럴 수도 있지.”
  그럼 난 간다, 조금 머뭇거리는 토우지를 보며 나는 괜찮다는 의미로 머쓱하게 웃었다. 나만 남은 양호실에는 아직 끝나지 않은 체육시간 소리만 창 밖에서 흘러들어왔다. 새삼 양호실은 엄청나게 하얘보였다. 응, 별 일 없겠지. 나는 괜히 시큰대는 발목을 만지작거렸다.
  원래도 그냥 집에 갈 생각이었다. 친구들이랑 모여서 파티를 한다거나 하는 것도 내키질 않아 그냥 집에 가는 길에 서점에 들러 나에게 주는 선물인 셈 치고 읽고 싶었던 책이나 한 권 사 내 방에서 편하게 쉬면서 읽을까 했었다. 근데 발목이 이렇게 성칠 못해서야, 서점에 들리기도 뭐하겠다. 그거 살 돈은 챙겼던가, 주머니를 뒤적거리는데 수업종이 쳤다. 다음 수업은 들어가야 할텐데, 나는 풀썩 침대에 누웠다. 날씨 좋다. 잠이나 잘까. 눈을 감으니 시원하게 바람이 불었고 새삼 학교 냄새가 났다. 아픈 것만 아니면 좋네, 이래서 땡땡이를 치나보다. 나는 눈을 감고 몸에 힘을 뺐다. 양호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굳이 그쪽을 보진 않았다.
  “신지 군?”
  나는 익숙한 목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옆엔 카오루가 걱정스런 얼굴로 서있었다.
  “카오루 군? 어디 아파서 온 거야..?”
  “으응, 신지 군이 다쳤대서….”
  나는 조금 기쁘면서도 부끄러웠다. 학년도 다르고 생활하는 층도 다른데 카오루 군은 항상 나를 반 친구들보다도 더 세심하게 신경 써줬다. 그야, 그냥 친구 사이가 아니니 당연한 일인 걸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그러지 못하는 걸 생각하면 나는 항상 숨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괜찮아? 많이 아파?”
  “괜찮아. 걱정시켜서 미안해.”
  “아냐.”
  카오루는 침대에 걸터앉아 내 머리를 쓸어넘겼다. 꼭 방금 전까지 햇살을 머금은 채 밖에서 불어온 바람처럼, 아니 그것보다 조금 더 기분 좋게 그의 손가락들이 내 머리칼을 매만졌다. 나는 그의 얼굴을 조금 더 가까이서 보고 싶어 몸을 일으켰다.
  “피곤할텐데 누워 있어.”
  “발목만 다친 건데 뭐. 괜찮아.”
  카오루는 손을 뻗어 아주아주 조심스레 검지 끝으로 내 발목 선을 따라그렸다.
  “끝나고 깜짝 데이트 하려고 했는데.”
  “응?”
  “그냥, 조금 근사하게 밥도 먹고, 너 하고 싶은 거 있음 같이 하고, 그러고 싶어서. 학생이긴 하지만 일 년에 두어 번 정도는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해서….”
  물론 신지 군한텐 한 마디도 안 했지만. 카오루는 어깨를 한 번 으쓱, 하며 말했다. 데이트라, 조금 낯간지러운 이야기였다. 그치만 가슴이 부풀어 오르는 것처럼 설레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신지 군.”
  나는 수없이 바라봐온 카오루의 눈과 코와 입을 조금 긴장한 채 봤다. 마침 조금 강하게 분 바람에 영화처럼 커튼이 펄럭였고 쏟아지는 새하얀 빛에 그는 정말이지 햇살로 화할 것만 같았다. 카오루의 상체가 내 쪽으로 조금 기울었고 그는 그렇게 내 턱을 가볍게 잡고 내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리곤 우린 처음으로 혀를 섞었다. 여태껏 느낀 적 없던 야릇한 기분이 그의 보드라운 혀와 함께 나에게 흘러들어왔고 나는 나도 모르는 새 그의 교복 셔츠를 붙들었다. 아주 잠깐의 순간이었다. 그럼에도 난 미친듯이 뛰는 마음을 붙잡기가 어려웠다.
  “..역시 내가 조금 서둘렀지?”
  “카오루 군…"
  “그치만 갑자기 너무 기뻐서. 신지 군처럼 사랑스런 아이가 나랑 같은 땅에 태어나 같은 햇빛을 맞고 같은 숨을 마시는 게, 정말로 기적 같아서 나도 모르게….”
  카오루는 처음으로 부끄러워 했다. 입술이 타는지 혀를 살짝 내미는 모습이 창가에서 불어들어오는 청량한 바람에 섞여 내 마음을 훑고 지나갔다.
  “실은.. 조금 더 깊어지고 싶어.”
  그치만 신지 군이 싫다면 나도 싫어, 카오루는 배시시 웃었다. 나만이 아는, 다른 데에선 짓지 않는 웃음이었다. 나는 그걸로도 충분한 생일 선물이란 생각이 들었다.
  “신지 군.”
  “응, 카오루 군.”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앞으로 계속 곁에 있을게. 신지 군만 좋다면 영원히 곁에 있을게. 항상, 항상.. 신지 군의 행복을 가장 깊고 크게 빌어주고 싶어. 가능하다면 이뤄주고 싶어. 그리고….”
  카오루는 숨을 잠시 참았다. 나는 그의 손을 잡았다. 그건 듣지 않아도 알고 있는 질문에 대한 내 벅찬 대답이었다.
  “신지 군이 태어났다는 기적 같은 사실을 다른 그 누구보다도 가장 가까이서 느끼고 싶어."
  나는 발목 아픈 것도 잊을 정도로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카오루의 손을 잡은 내 손이 덜덜 떨렸고 그는 가만히 웃더니 그대로 나를 품에 포옥 안았다.
  “생일 축하해, 신지 군.”
  “카오루 군.."
  “태어나줘서 고마워.”
  그의 다정다감한 손길이 내 뺨부터 귀, 그리고 뒷통수를 부드럽게 쓸었다. 내 어깨를 잡은 채 카오루는 가만히 내 눈동자만을 바라봤다. 그의 눈은 떨리진 않았지만 어떤 고동 같은 것이 느껴졌다. 나도 덩달아 안에서 뭔가가 뛰는 것 같았다. 고마워. 고마워. 그 마음들이 터질듯이 쿵쿵대 나는 카오루의 품에 더 깊게 안겼다. 네 말대로, 그것은 어쩌면 기적. 지금처럼 손을 맞잡고, 눈을 맞추고, 마음을 맞추어 우리가 만들어 가는 것. 너와 내가, 함께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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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신) 나무

2015. 5. 31. 01:20 from 에바

  아가, 너는 울고 있니?”

  쏟던 눈물이 절로 멈춘 고개를 쳐들고 여기저기 둘러본 하늘엔 푸르게 피어난 나뭇잎들만이 바람 소릴 흉내내며 움직이고 있었다. 무성한 잎들 사이로 손을 뻗듯 햇살이 곧게 쏟아졌고 나는 기복이 잦아든 마음으로 등을 맞대고 앉아있던 나무에 완연히 기댔다. 나무껍질에서 스며나오는 청아한 내음을 맡으니 절로 숨이 곱게 나왔다. 그게 내가 그에게 처음 안긴 날이었다.

  수백 년까지는 아니지만 최소한 자신을 찾아온 사람들을 품어줄 정도의 나이는 됐다고 했다. 세월 사람들은 어른 아이 없이 여름이면 자신의 그늘에서 달아오른 피부를 식혔고 봄가을에는 선선히 부는 바람에 흔들리는 자신의 이파리를 보며 생각에 잠기곤 했다고 그는 말했다. 그런 말들이 내 마음에 들렸다. 나는 음파로는 전해지지 않는 목소리가 좋아 매일 같이 그의 뿌리께에 앉아 말을 걸었다.

  그럼 요정 같은 거야? 이 나무에 사는.”

  글쎄, 그게 뭔지 잘 모르겠는 걸. 난 아주 작은 방에서 싹 틀 때부터 여기에 있었어.”

  자그마한 개미 한 마리가 발치를 지나 기어갔고 나는 기지개를 켰다.

  내 이름은 이카리 신지야.”

  예쁜 이름이구나.”

  ?”

  이전까지 불던 방향의 반대편에서 불어온 바람이 그에게서 잎 두어 장을 떨어뜨렸다. 나는 떨어진 잎을 주워 만지작거렸다. 잎맥은 손금처럼 생생하게 갈라져 있었다.

  네가 지어줄래?”

  그래도 되는 거야?”

  그야 아무도 그래준 적이 없는 걸.”

  나는 그에게 머리를 기댔다. 무언가 조심스레 하지만 바삐 흐르는 것 같았다.

  “..카오루.”

  다시 원래 방향으로 부는 바람에 시원스레 뻗은 그의 가지들이 이리, 저리 흔들렸고 이파리 끝에 맺혀있던 이슬인지 깨끗한 방울 하나가 뺨에 토독 떨어졌다. 카오루가 그렇게까지 말해준 건 그게 처음이었다. 나는 조금 욕심이 났다. 거친 껍질과 종종 흔들릴 뿐인 가지들이 그의 전부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밤을 자고 난 뒤 나는 그에게 말했다.

  , 카오루를 만나고 싶어.”

  나는 지금 여기서 너와 만나고 있는 .”

  아냐, 내가 원하는 그런 아니란 말야.”

  그럼?”

  진짜 너를 만나고 싶어. 나무가 아니라.. 나랑 손을 맞잡을 수 있는, 서로 마주 볼 수 있는….”

  카오루는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동안의 모든 이야기들이 착각이었나 싶어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의 몸을 짚었다.

  신지.

  .”

  나는 신지사랑해.”

  ?”

  신지나를 처음으로.. ‘해줬으니까. 내게.. 이름을 붙여줬으니까.”

  나는 카오루의 우툴두툴한 피부에 뺨을 갖다댔다. 결국 나는 듣고 싶은 이야기를 들은 셈이었다.

  내가 너를 안으려면 나는 나무를 떠나야 ."

  그럼 넌 죽는 거야?”

  그의 가장 넓게 뻗은 가지가 흔들렸다. 나는 연인의 손을 잡듯 그의 껍질을 손끝으로 훑었다.

  내가 나무를 떠나길 원하니?”

  카오루….”

  신지, 나는 너의 마음을 묻고 있는 거야.”

  나는 고개를 돌려 카오루에게 이마를 맞댔다. 잎새 사이로 바람이 휘어지는 익숙한 소리가 평소보다 조금 크게 들렸다. 그는 내 속을 쉽게 읽었다. 나는 별 말 없이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에 그를 만나러 갔을 때 나는 도끼를 챙겨 갔다. 카오루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가지를 몇 번 흔들 뿐이었다.

  할게.”

  , 신지.”

  나는 도끼를 든 팔을 최대한 크게 휘둘러 그의 밑둥을 내리찍었다. , 하고 둔탁한 파열음이 들렸고 어설픈 도끼질을 몇 차례 더 하자 점점 그의 살구빛 살점이 뜯겨나왔다.

  아아..!”

  쇳날이 그의 안쪽을 찍자 나 모르게 참고 있던 그의 고통스런 신음이 순식간에 터져나와 내 마음 속을 번잡하게 헤집었다. 처음 듣는 음색에 나는 감히 어디에도 비교할 수 없는 두려움에 휩싸여 그대로 도끼를 떨어뜨렸다.

  카오루!!”

  신지, 멈추지 말고 계속 해.”

  그치만, 그치만….”

  신지가 원하는 일이라면 나는 괜찮아.”

  네가 괴로워하는 건 원치 않아!”

  나는 그에게 처음으로 소리를 질렀다. 주위는 그를 만난 이후로 처음으로 적막에 잠겼고 그렇게나 흔히 불던 바람도 흔적 하나 없었다. 나는 손을 뻗어 카오루에게 닿으려 했지만 그의 말이 나를 멈췄다.

  그럼 괴로워 하지 않을게.”

  뭐야 그게, 나는 울음을 조금 참으며 반문하려 했지만 카오루의 모습은 어쩐지 그 모든 걸 튕겨내는 것 같아 다시 도끼를 집어들었다. 연이은 도끼질은 다른 나무들을 패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나는 처음으로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됐다. 도끼자루를 쥔 손이 새빨갛게 부을 때까지 네가 사는 나무를 내리찍자 우지끈 소리와 함께 나무가 넘어갔다. 점점 빠르게 고꾸라지는 나무에선 허여멀건한 몸뚱아리 하나가 빠져나왔고 나는 반사적으로 그를 잡으려 양팔을 벌렸다. 카오루의 뭉개질 것처럼 연약하고 부드러운 육체는 나에게 쓰러지며 안겼다. 햇빛을 빛나 시리게 반짝이던 잎새들처럼 그의 머리칼은 하얗게 빛났다. 눈대중으로 보기에 나보다 되려 조금 더 큰 것 같은 그의 몸엔 힘이라곤 하나도 없었고 그는 내 가슴팍에서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신지. 그렇게 입을 벙긋거린 카오루의 눈은 새빨간 색이었다. 그 잘 뻗은 가지에 열매가 맺혔다면 이 색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카오루는 갓 태어난 사족보행 동물처럼 비틀대다 제자리에 서 나를 끌어안았다. 그게 내가 그에게 마지막으로 안긴 날이었다. 그는 요정도 뭣도 아니었다. 그런 것들이 된 것도 아니었다. 그는 내가 베어낸 한 그루의 나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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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머더래빗 :

  "미안, 나기사 군. 그건 좀 곤란해."

  "왜?"

  "그, 왜냐니... 남자잖아? 우리 둘 다. 안 되는 게 당연하잖아."

  당연이라. 당연. 당연. 당연. 마땅한 것. 생이 있는 것들이 절로 흘러가듯 자연스러운 것. 그래, 그런 것이라.

  "아, 나기사 군, 그게..."

  "..."

  "미안해."

  미안해? 뭐가? 나를 보기좋게 찬 게? 당연하다고 아무 생각없이 발음해 뱉어버린 게? 미안, 미안하대. 미안이랜다.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 피식 웃고는 그대로 신지를 두고 방에서 나와 방향감각도 없이 발끝이 닿는 대로 걸어댔다.

  내가 너를 사랑하듯이 네가 나를 사랑할 거라곤 쉽게 생각하지 않았어. 그치만 난 네가 최소한 시도는 해볼 줄 알았는데. 나를 사랑하려는 시도까진 아니어도 좋았어, 그냥 나를 이해하려는 시도였어도 좋았을텐데. 그걸로도 난 살만하다고 느꼈을 거다. 충분히 살만하다고 자위하면서 유리덮개 안에서 곱게 고개를 떨군 꽃 같은 너를 보고 보고 또 보다가 참을 수가 없어질 때 겨우 향기나 한번 맡았을 거야. 어쩌면 꽃잎을 엄지랑 검지로 만지작거렸을지도 모를 일이지. 그래도 난 너를 꺾지는 않았을텐데. 그 똑 하고 꺾이는 소리는 호수에 물 튀듯 맑고 깨끗하겠지만 그럼에도 난 널 꺾진 않았을텐데.

  그런데 넌 왜 나를 꺾었을까.

  왜 그랬어, 왜 그랬어 신지 군. 나는 내 방에 들어오면서 주술이라도 걸듯 중얼거리다 침대에 털썩 걸터 앉았다. 신지 군. 그렇게나 곤란한 척을 하던 신지 군. 사실은 불쾌했잖아. 결국 불쾌했던 거잖아. 눈에서 깜짝 놀랄 정도로 많은 눈물이 흘러 손으로 닦는게 무색할 정도로 나는 울기 시작했다. 왜 그랬어. 왜 미안하다고 했어? 내가 미안하단 말은 하지 말랬잖아. 신지 군은 그냥 있는 것만으로도, 거기 그래 그렇게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서 어떤 일을 저질러도 적어도 나에겐 괜찮다고 했잖아. 신지 군. 신지. 왜. 왜 그랬어. 나는 주먹을 쥐고 벽을 마구 내리쳤다. 이렇게 하면 들릴까? 무슨 일인가 놀라서 내 방으로 찾아올까? 그럴리가. 넌 그럴 깜냥이 안 될 거야. 나는 더욱 세게 벽을 내리쳤다. 소리는 지르지 않았다. 그러고 싶어도 이제 닦지 않는 눈물이 줄줄 흘러서 목이고 마음이고 싹 막혀 꺽꺽 듣기 싫은 쇳소리만 났을 뿐이었다.

  나는 미웠다. 나는 신지가 너무 미워. 그렇게나 바라봤는데, 그렇게나 애타게 바랐는데. 너는 왜 날 항상 밀어내는 거야? 왜 날 여기까지 밀어버린 거야? 네가 걸을 길을 뒷걸음질 쳐가며 마련했는데 결국 내가 디딜 곳마저 없는 곳으로 넌 왜 걸어온 거야? 넌 내 눈을 보며 애매한 미소였지만 어쨌든 웃으며 나를 따라왔잖아. 너는 내가 추락하는 게 보고싶었던 걸까. 신지 군. 끝이 있을지나 모르겠는 곳으로 날 밀쳐내는 와중에도 아름다웠던 네 미안하단 목소리. 아름다웠던 네 눈동자. 나는 벽을 치던 손을 멈췄다.

  "신지 군.."

  보고 싶어. 이젠 더 이상 자신 있게 널 마주하기 어렵겠지. 난 괜찮아도, 넌 보나마나 지금도 죄책감에 싸여 병실 침대 같은 그곳에서 몸을 비틀고 있을 거야. 신지 군은 너무나도 착한 아이니까 어쩌면 울고 있을지도 몰라. 울고 있는 네 모습을 떠올리면 견딜 수가 없다. 새하얀 시트보다 더 하얗게 질려 큰 소리도 내지 못하고 꺼이꺼이 우는 네 모습은 슬픈만큼 사랑스러워서 나는 항상 너를 달래면서도 조금 짓궂은 생각을 했다. 네가 너를 꼬옥 안아준 건 네가 얼른 마음을 추스리고 울음을 그치길 원해서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내 품 안에서 둥지로부터 떨어진 새처럼 파르르 떠는 네 뜨거운 몸의 진동이 좋아서이기도 했다. 같은 또래의 남자아이인데도 너는 매번 안을 때마다 내 품과 맘에 꼭 차게 들어왔다. 네가 너와 나 사이에 틈을 안 주길래, 나는 네가 나를 사랑하는 줄로만 알았다. 그치만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나는 벽에 머리를 쿵, 쿵 박았다. 아, 나는 이제 살 이유가 없다. 너와 함께하지 못하는 삶이라는 건 그야말로 무가치하다. 나는 머릿속에 어절이 떠오를 때마다 머리를 찧었다. 목까지 찌르르 충격이 내려왔지만 기계적으로 계속 머리를 박았다. 나는 지금 뭘 하는 거야? 왜 이러는 거야? 왜? 뭐 때문에? 누구 때문이더라?

  아, 맞다. 네가 나를 찼지. 새까맣게 타들어가 바닥에 눌러붙은 미련을 긁어내며 나는 생각했다. 죽여버릴 거야. 응, 역시 그게 좋겠지. 아무래도 내가 갖지 못한 신지 군을 그대로 방치해둘 순 없어. 신지 군을 죽이고 싶다. 나를 바라보던 그 모호한 눈빛도, 나를 이리도 휘저어 놓은 내 속의 너도 죽여버리고 싶다. 너를 떠올리면 그렇게 아프고 아렸던 마음도, 너에게 들려주고파 속으로 외던 멜로디도, 어쩌다 가끔 나를 향해 정말 행복한 얼굴로 웃던 네 예쁜 눈코입도 전부 다 찢고 짓이길 거다. 싸그리 잊을 거야. 지금부터 널 싸그리 잊을 거야, 신지 군. 너를 봐도 조금도 설레지 않게, 너를 생각해도 더 이상 울지 않게 너를 없애버릴 거야. 나중에 울고불고 매달려도 소용 없어. 그 예쁜 얼굴을 잔뜩 우그러뜨리며 빌고 기어도 손 쓸 수 없도록 너를 지울 거야. 그니까. 그러니까.

  나를 꼭 돌아봐줘. 나를, 나만을 향해서 웃든 울든 화내든 한 번만 네 표정을 보여줘. 그건 정말로 아름다울 거야. 기십 번을 죽어도 잊을 수 없을만큼 깊고 아프게 새겨질 거야. 무슨 얼굴을 해도 예쁠, 예쁜, 나의 신지 군. 그치만 넌 역시 행복해야해. 넌 역시 행복해야해. 신지 군은 웃는 게 정말로 사랑스러우니까. 너무나도 사랑스러우니까. 내가 지금 무슨 마음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고 앞으로도 셀 수 없이 화를 냈다 슬퍼했다 증오했다 외로워했다 절망했다 네 행복을 빌게 되어도 너는 변함 없이 사랑스럽겠지. 내가 변해도 너는 미치도록 사랑스러울 거야. 신지 군. 내가 사랑하는 신지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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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머더래빗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