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짧은데다가 의식의 흐름
세계관 개무시
캐붕주의
원작 몰이해 주의
널 지우려 해 들으면서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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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만은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나의 말을 너는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는 듯 애매한 미소로 웃어넘겼더랬다. 좋아한다는 거야, 아무렇지 않게 내뱉은 말에 되려 너는 고심했다. 너는 이것저것 궁금해했지만 목적을 묻진 않았다. 나는 너를 만나기 위해 이 땅에 태어났을거라고, 나는 정말로 그렇게 믿었다.
너를 잊는 것은 일면 합리적일진 모르나, 내 마음에 드는 일이 아님에는 분명했다. 그래서 다시 너를 기다리는 동안 네가 조금이라도 흐려질 것 같은 기색을 보이면 나는 몇번이고 네 연약한 미소를 상기하며 영겁의 시간을 보냈다. 그럴수록 너는 희미해져갔다. 가끔씩 잡던 네 손은 답지 않게 차가웠다. 그렇지만 가장 차가웠던 것은 그때 마지막으로 나를 움켜쥔 대리자의 손이었다. 그치만 네 눈시울은 뜨거웠다.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안녕, 나는 - 몇번째였더라 - 너와 잠정적으로 이별했다.
무시로 밝은 지구의 위성을 등지고 너를 찾아내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익숙해질 때까지 반복하는 것은 이미 나에겐 목표가 아닌 과정의 일부였다. 어쩐지 더 수척해보이는 너는 또다시 타인이 보낸 비를 맞고 있었다. 이번엔, 이번엔 완벽하게. 나를 보고 배시시 웃는 너를 보며 나는 억장이 무너져내렸다. 나는 또 억지를 부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엉망진창이랄 것도 없이, 모든 것이 소멸한 원점의 방에서 네 보잘 것 없는 육신이 숙명에 제 남은 의미를 맡길 때 나는 또 다시 찾아온 실패 속에서 '다음에는'이라는 무책임한 네 글자를 힘겹게 씹어삼켰다. 하지만 언젠간 끝을 내야겠지. 내가 다시 찾아오지 않아도 될 상황이 되어야만 네가 진정으로 웃을 수 있을테니까. 그 때 나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 너를 사랑하노라고 말해도 되는 걸까. 하늘에 흩뿌려진 수많은 별 중 하나가 아닌 자신만의 빛과 궤도로 존재하는 별을, 들판에 한가득 핀 수많은 꽃 중 하나가 아닌 자신만의 색깔과 향기로 살랑이는 꽃을 닮은 너에게, 나는 온당한 상대로서 남을 수 있을까.
너를 처음 만났던 곳. 희망과 절망이 보기좋게 엉켜있던 그 땅에서 너를 마지막으로 한번 만나고 싶었다. 과한 욕심으로 끝끝내 너와 함께 했지만 이건 아니란 걸 깨닫기엔 배드 엔딩이 조금 더 발이 빨랐다. 한도 없이 되돌아걸으면 너를 또 만날 수 있겠지. 얼마나 더 가야할지 알 수 없어도 좋다. 분명 다시 만날 수 있어, 신지군. 신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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