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이도저도 아닌

140713. 열대야

머더래빗 2014. 11. 6. 16:51


  는 내가 전기장판이라도 틀고 잠든 줄 알았다. 아, 맞다, 우리 집에 전기장판 없지. 졸음 때문에 해까닥 뒤집어지려고 하는 눈을 겨우 깜빡이며 벽을 더듬어 불을 켰다. 침대는 이미 땀으로 흥건히 젖어있었다. 이거 냄새 날텐데. 그럼 그 새끼가 분명 뭐라 하겠지.  


  아, 맞다. 나 헤어졌지.

 

  보름이나 지났다. 구질구질하게 헤어진 것도 아니었다. 그냥, 좋아서 만났다가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너무 헤프게 태워버리는 바람에 금세 마음이 식어 일어난 흔한 헤어짐이었다. 안녕, 그동안 즐거웠어, 고마워, 더 잘 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안녕. 누구 하나 울먹거리지 않고 동시에 등을 돌려 반대 방향으로 걸어간 그 날 밤의 기온은 28도였다. 정말, 변명이 아니라, 그 날 밤에 잠들지 못했던 건 더워서였다.

 

  옷을 훌렁훌렁 벗고 욕실에 들어가 샤워기를 틀었다. 찬물이 살갗에 닿자 싸한 느낌이 몸 여기저기에 퍼져나갔다. 찬물로 자면 잘 못 잔다고 그랬던가. 모르겠다, 더워서 따뜻한 물로 씻을 기분이 전혀 안 든다. 머리 위로 떨어진 차가운 물이 내 몸을 타고 흐르면서 점점 미지근해지는게 느껴진다. 기분 나빠. 허벅지부터 정강이를 따라 주르륵 흐르는 뜨뜻한 물줄기가 나를 옥죄는 것 같다. 이래가지곤 씻는 보람이 없잖아. 나는 샤워기를 껐다. 머리칼에서 떨어지는 물방울들이 욕실 바닥에 보일락 말락 하는 옅은 파동을 만든다. 답답하다. 습한 공기가 명치께를 무겁게 짓누른다. 나는 수건을 들고는 도망치듯 욕실에서 나왔다.

 

  몸을 대충 닦고 옷을 입은 후 침대에 걸터앉아 선풍기를 틀었다. 하루에 한 20시간은 트는 것 같은 선풍기가 탈탈거리는 시원찮은 소리를 내며 돌아간다. 이제야 좀 살겠네. 확실히 젖은 상태로 바람을 쐬니까 시원하다. 나는 수건으로 머리를 말리기 시작했다. 이거 어떻게 해야 기분 좋게 금방 마르더라. 너는 되게 능숙했는데, 그래서 내가 물어봤잖아, 혹시 미용실에서 알바 했냐고. 그때 피식 웃던 네 입가에 파인 보조개가 정말로 예뻤다. 너야말로 남자애가 손에 이렇게 힘이 없냐면서 내 손 끝을 만지작 거리던 네 손도 예뻤다.

 

  손에 힘이 빠진다. 나는 양 손을 힘없이 늘어뜨리고 멍하니 선풍기를 바라봤다. 덜 말린 머리에서 물이 흘러내린다. 체온 때문에 뜨뜻해진 물줄기가 또 기분 나쁘다. 기분 나빠. 정말로 기분 나쁘다. 물줄기가 뺨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린다. 뭔데, 이건 뭔데 이렇게 뜨겁냐. 이래서 나는 여름이 싫다. 전엔 정말 좋아했는데. 전엔 정말로... 좋아했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머릴 비비곤 수건을 방구석에 던져버렸다.

 

  벌써 새벽 세시다. 오늘 잠은 다 잤네. 나는 다시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여전히 덥다. 배를 훌렁 까고 대자로 누워도 몸에, 특히 눈가에 어린 열이 가실 생각을 않는다. 제발, 빨리 끝나라. 부탁이니까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나는 열대야의 꿉꿉한 공기보다 더 답답한 한숨을 내쉬었다.

 

  더워, 잠들 수가 없다.